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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샤넬(CHANEL)에 대하여(2)

by 패플 2020. 9. 3.

 

일생 동안 사랑했던 한 남자의 죽음 이후 샤넬의 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기대하시라

 

샤넬은 첫사랑의 죽음 이후에 유명한 귀족들을 계속 만나게 된다.

(하지만 샤넬은 진정한 사랑은 카펠뿐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황제의 조카였던 드미트리 대공, 그리고 유럽 최고의 부호 대영제국의 웨스트 민스터 공작 등..
이러한 만남에서 샤넬은 무수히 많은 영감을 얻는다. 

 

드미르리 대공 (출처:구글)

 

드미트리 대공과 휴가를 갔다가 향수를 만들고 있던 '에르네스트 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안 그래도 향수를 만들고 싶었던 샤넬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에르네스트 보는 샤넬에게 시제품 10개를 가지고 오게 되고, 

샤넬은 그중 5번째 향수 제품을 고르고 이름을 붙인다.

 

에르네스트 보와 넘버5 향수 (출처:구글)

이 향수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이 쓰는 바로 '넘버 5'
1921년 5월 5일 출시된 이 향수에 처음으로 더블 C 마크까지 붙게 된다. 
(당시 향수의 이름은 저녁의 욕망, 봄의 도취 등의 

중2병(?) 가득한 이름들이었는데 비해 샤넬의 향수의 네이밍은 파격적이었다.
비슷한 예로 1955년 2월에 어깨끈이 있는 핸드백을 출시했는데

 'The 2.55 bag'이라는 네이밍을 내놓았다.)

 

 

적극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넘버 5는 불티나게 팔리게 되고 향수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 샤넬.
드미트리 대공과의 만남으로 향수의 성공을 받게 된 샤넬의 연애 선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샤넬은 드미트리 대공과 만날 때 러시아 귀족들을 극진히 살폈다.
그때 러시아 전통 자수를 눈여겨본 샤넬은 후에 옷에 도입하게 되고, 

자수의 관리는 드미트리 대공의 여동생 
'마리아 파블로브나'에게 맡기기까지 한다.
다른 러시아 귀족들에게는 모델이나 매장의 점원도 시키게 된다.


(샤넬은 나중에 이 덕을 보게 되는데 그 부분은 조금 뒤에 설명하도록 하겠다.) 

 

샤넬과 웨스트민스터 공작 (출처:구글)

그리고 위에서 잠깐 언급했었던 엄청난 부자 웨스트 민스터 공작 과의 만남 때는 
둘이 요트, 승마, 사냥, 낚시 등의 활동을 하면서 영국 남자들이 입던 소재를 눈여겨본다.
그 소재가 바로 나중에 재킷에 쓰게 되는 '트위드'이다. (샤넬의 시그니쳐인 트위드 재킷에 쓰인 소재)

 

샤넬 트위드 컬렉션 (출처:구글)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향수와 액세서리 매장을 제외하곤 

샤넬의 모든 매장이 문을 닫게 되고
스위스로 건너간 샤넬은 프랑스에서 점차 잊히게 된다. 
그리고 패션계는 샤넬이 유행시켰던 활동과 심플이 사라지고 다시 여성의 몸매를 두드러지게 하고,
화려함으로 무장을 한 '디올'에게 왕좌가 돌아간다.
샤넬이 설 자리는 없어지게 되고 그렇게 14년이 흘렀다..

 

14년이 흘렀지만 샤넬은 복귀를 준비한다. (이때 샤넬의 나이 71살)
그저 향수 브랜드쯤으로 치부되던 샤넬은 1954년 2월 파리에서 패션쇼를 연다.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대참사 수준이었다.
심지어 패션잡지들도 구닥다리라고 혹평을 해대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반전이 찾아왔다.
복귀 패션쇼에서 등장했던 옷들을 고급 상점가에서 주문하고 언론들도 열광하기 시작했다.
특히 러시아 망명자 출신의 언론인들이 샤넬한테 열광적인 반응을 보냈다.
아까 위에서 샤넬이 러시아 귀족들을 잘 챙겨 주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자수의 책임자였던 드미트리 대공의 여동생 마리아 파블로브 나도 
뉴욕에 거주하고 있었고, 수많은 망명 귀족들이 샤넬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귀족들의 성원에 힘입어 미국이 샤넬을 다시 살렸고 끝내 프랑스와 유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지도 않고 바쁠 땐 먹지도 않고 혼자 있는 걸 못 견뎌하고 그래서인지
새벽 3~4시까지 일하던 샤넬이 1971년 8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화려한 업적과 많은 작품을 내었던 샤넬인데 그녀의 죽음 이후 회사는 고꾸라지기 시작하는데,
그때 샤넬의 경영진은 드디어 '칼 라거펠트'를 영입하게 된다.

 

칼 라커펠트 (출처:구글


1983년 영입된 라커펠트는 샤넬의 스타일을 부활시키고 새롭게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보통 라거펠트가 샤넬의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얘기를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카펠과의 연애 시절 사진을 비롯하여 샤넬이 찍힌 모든 연애시절의 사진들을 다 찾아본 뒤,
그 당시 샤넬의 감정을 떠올려 그 감정을 기반으로 트렌디함을 더해 샤넬의 스타일을 되살려낸다.

라커펠트의 재임 36년 동안 샤넬은 다양한 변화를 꾀한다.

 (따로 칼 라거펠트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룰 예정)
유명 셀럽과 그 시대의 유명인사들에게 초대장을 보내(지드래곤 포함ㅎㅎ
컬렉션에 모델로 세우는 등의 시도를 하고 계속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그 발전은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가장 강인하고 로맨틱한 삶을 살았던 가브리엘 코코 샤넬,
그리고 브랜드를 완전히 부활시켰던 칼 라거펠트를 떠나보낸

(칼 라거펠트는 고령으로 작년 2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샤넬이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브랜드일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패션계를 바라보는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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